Ψ~지옥기사 설화집~Ψ -4- [사냥꾼과 늙은 개] (성인용 동화, 잔혹동화)
Ψ~지옥기사 설화집~Ψ
-4-
[사냥꾼과 늙은 개]
한 사냥꾼이 그의 늙은 개를 데리고 사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검은 털에 늘씬했을 개는
이제 조금만 달려도 숨을 헐떡이는 늙은 개가 되었습니다.
사냥꾼은 조심스럽게 바람의 세기가 약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사냥용 소총에 총알을 장전했습니다.
민감한 동물들은
바람에 타고 전해지는
화약 냄새와, 납탄 냄새를 맡고는
벌써 멀리 도망가 버리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냥꾼은 매우 능숙한 사냥의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눈은 목동의 눈과 같았고,
그의 귀는 정찰대의 귀와 같았습니다.
민감한 사냥꾼의 귀에 풀숲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작은 동물은 아니었습니다.
좀 더 몸집이 큰 놈의 기척이었습니다.
그의 눈은 이제 사냥감을 찾기 위해 소리가 난 곳으로 번뜩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순식간에 팔 근육을 긴장시켜 총구를 그 방향으로 끌어당겼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날 쏠 셈이야?"
사냥꾼은 깜짝 놀라 총구를 거두었습니다.
"이런, 죄송합니다. 설마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괜찮아, 쐈어도 상관없긴 한데 감히 나한테 총을 들이대?"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습니다.
사냥꾼은 그 사내의 허리춤에 걸려있는
긴 검 집과 권총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옆구리에 어울리지 않게 들려있는 낡은 투구도 보았습니다.
부자이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사냥꾼은 본의 아니게 사람을 겁주었다는 미안함에 사과했습니다.
"사냥을 하고 있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럼 너는 사냥꾼이냐?"
"예, 그렇습니다."
키 큰 사내는 사냥꾼의 대답에 잠시 동안 흐음, 하고 뭔가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는 사냥꾼과 그의 옆에 앉아있는 늙은 개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늙은 개는 마음을 놓고 있는 것 같아 보였지만,
힐끗힐끗 키 큰 사내를 살피면서 내심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어린 개였다면 으르렁거리거나, 달려들었겠지만
나이 든 개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자신의 주인과 그의 손님이 불편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감시와 경계의 눈초리는 변함없이 낮게 번뜩이고 있었지요.
"저, 그럼 저는 이만 사냥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키 큰 사내는 사냥꾼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사냥꾼과 개를 계속해서 물끄러미 보고만 있었습니다.
사냥꾼이 대답을 기다리다가 고개를 저으며
사내를 뒤로 한 채 산속으로 몇 걸음 더 걸어가자,
뒤에서 그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나도 같이 가지. 내가 사냥감 많은 곳을 아는데."
사냥꾼은 자신을 따라 성큼성큼 걸어오는 사내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는
사냥은 하나도 할 줄 모르는 허영심에 가득한 철없는 귀족 아들이
호기를 부리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내의 걸음걸이를 보고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키 큰 사내는 나름대로 사냥꾼들이 기척을 죽이고 걸을 때 사용하는
보행법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드럽게 뒷발굽을 땅에 대고,
자연스럽고 천천히 발바닥을 물결과 같이 바닥에 딛는 방법이죠.
사냥꾼은 이 남자가 함께 다닐지라도 적어도
사냥감들을 도망가게 만들 사람은 아니겠군, 이라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게다가 부잣집이나, 귀족집 자식이면 나중에 뭔가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감도 생겼습니다. 물론, 그게 비록 사냥감은 아닐지라도...
"좋수다. 같이 갑시다."
"좋아. 사냥터로 안내해주지."
키 큰 사내는 씨익 웃었습니다.
늙은 사냥개는 주인의 뒤를 따랐고,
자신의 뒤에 의문의 사내를 두었습니다.
늙은 개는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처음 보는 사내의 행동을 살폈습니다.
* * *
사냥꾼은 그 사내가 안내한 사냥터에서
꽤 많은 성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토끼 같은 작은 사냥감은 물론 오늘은 노루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덕분에 오늘 사냥은 대박이 났군요!"
사냥꾼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연하지, 내 말만 잘 들으면 대박이 난다니까."
사내는 히죽 웃었습니다.
사냥꾼은 뭔가 대접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재수가 좋은 날은
액땜하는 게 필요한 법이니까요.
"자 이쪽으로 오시죠. 내 오늘 잡은 것 중에서 하나 맛있게 요리해서 대접해 드리리다."
"낄낄, 그거 좋지."
사냥꾼은 사냥꾼들만의 쉼터로 키 큰 사내를 안내했습니다.
그곳에는 사냥꾼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휴식이 필요할 때 잠시 쉬어가는 작은 오두막이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장작을 모아 불을 지피고,
고기를 맛있게 구울 수 있는 그릴도 준비했습니다.
그 밑에는 작은 원통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옆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았습니다.
"자 일단 고기를 손질한 다음."
사냥꾼은 허리춤에서 검지 손가락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서 솜씨 좋게
토끼 가죽을 걷어 내었습니다.
비계와 약간의 기름기는 그대로 남겨두었습니다.
고기의 진정한 맛은 바로 기름기에 있다는 것을 사냥꾼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에게 동물의 비계는 꼭 필요한 일종의 영양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는 토끼고기의 내장까지 말끔하게 발라내고는
꼬챙이에 고기를 꿰뚫어 그릴 위의 은은한 열기 위에 살짝 올려놓았습니다.
"오늘은 별식까지 준비되어있는데, 어떻습니까?"
"별식이라니?"
키 큰 사내가 씨익 웃으며 되물었습니다.
"이제 제 늙은 개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서 말이죠...
아까도 보셨죠? 솔직히 이젠 사냥에 그리 도움이 안 됩니다."
"아... 그렇긴 했었지, 아마?"
사내는 슬쩍 늙은 개를 쳐다보았습니다.
개는 붉은 황혼을 맞으며 앉아 뒷발로 귀를 긁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개를 불렀습니다.
늙은 개는 주인의 부름에 즉각 달려왔습니다.
사냥꾼은 개를 그릴 아래에 작은 원통으로 집어넣었습니다.
늙은 개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원통 안에서 달리며 원통을 회전시켰습니다.
원통은 천천히 돌면서 위에 걸려있는 쇠꼬챙이를 함께 회전시켰습니다.
사냥꾼은 불타는 장작더미에 장작을 좀 더 집어넣었습니다.
열기가 세지면서 두 사람이 앉아있는 곳까지 후끈함이 전해져 왔습니다.
쇠꼬챙이가 서서히 돌아가면서 불판의 은근한 열기에
토끼고기는 덜 익은 곳 없이 지글지글 잘 익어갔습니다.
사냥꾼은 키 큰 사내에게 맛 좋은 맥주를 대접했습니다.
어느덧
원통의 회전이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 멈추었습니다.
"이제 고기가 다 익었겠군요."
사냥꾼은 토끼고기가 꿰인 쇠꼬챙이를 들어 하나를 키 큰 사내에게 건넸습니다.
토끼고기 겉면에 묻어있던 기름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기분 좋게 끓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은 고기 한 부분을 덥석 물어 찢었습니다.
진한 육즙이 배어 나와 맛을 더했습니다.
두 사람은 토끼고기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토끼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날 법도 했지만,
사냥꾼들만의 신비한 향신료를 더하자 오히려 노린내는 풍미로 바뀌었습니다.
고기를 다 먹어 갈대 즈음, 사냥꾼은 그릴 아래의 원통을 열었습니다.
늙은 개는 이미 열기에 녹아 죽어있었습니다.
사냥꾼은 다시 주머니칼을 꺼내어
늙은 개의 가죽을 벗겨냈습니다.
맛이 없거나 못 먹는 부위의 내장도 깨끗하게 걸러냈습니다.
그는 여분으로 준비되어 있던 쇠꼬챙이를 꺼내어
이번엔 개고기를 꿰었습니다.
사냥꾼은 그 위에 소금을 약간 친 뒤,
장작을 더해 불길을 세게 했습니다.
이번엔 사냥꾼 자신이 직접 꼬챙이를 천천히 회전시켰습니다.
키 큰 사내도 어느덧 토끼고기를 다 먹고 쇠꼬챙이를 옆에 던져 놓은 뒤,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습니다.
개고기가 다 익었습니다.
사냥꾼은 개고기를 접시에 담아 잘 썰어낸 뒤,
다시 그 위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토끼고기와는 또 다른 향기로운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두 사람은 짧은 단도로 고기를 찔러서 입으로 가져가 뜯어먹었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또 한 접시가 비워졌습니다.
사냥꾼과 키 큰 사내는 부른 배를 기분 좋게 두드렸습니다.
"아, 정말 개고기는 맛있군."
키 큰 사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 그거 아나? 개고기보다 맛있는 고기가 뭔지?"
사냥꾼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고기질은 돼지고기, 소고기, 개고기 순으로 점점 맛있어지지."
그는 계속 말했습니다.
"개고기 보다 더 맛있는 고기가 뭐냐 하면,
바로 사람고기야."
사냥꾼은 믿을 수 없다는 눈초리로 키 큰 사내를 돌아보았습니다.
사냥꾼은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설마 인육을 의미하는 겁니까?"
그는 자신의 턱이 딱딱거리며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눈치챘습니다.
"왜? 뭐가 어때서?"
키 큰 사내는 기분 나쁜 웃음을 드러내 보이며 말했습니다.
"너네는 토끼, 곰, 사슴, 노루, 뭐 가릴 것 없이 다 잡아먹잖아? 거기에 사람 잡아먹는데 뭐가 이상해?"
"하지만, 하지만 당신은 인간이... 인간이 인간을 먹다니, 오오 세상에..."
"나? 난 인간 아니야. 그럼 됐지?"
사냥꾼은 이제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내가 인간을 잡아먹어도 이상할 게 없는 거지? 맞지?"
키 큰 사내는 일어섰습니다.
그리고는 늙은 개가 차고 있던 목줄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필요하면 피 한 방울까지다 빨아먹고는, 쓸모없어지면 버린다..."
사냥꾼은 사내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슬금슬금 뒤로 빠져나갔습니다.
"이 개는 이제 사냥에 쓸모가 없어졌겠지, 그래서 잡아먹은 거고."
키 큰 사내는 목줄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나직이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그래,
너는 인간의 추악함을 증명했으니 이제 쓸모가 없어졌어, 그래서 잡아먹을 거야."
사냥꾼은 사내가 투구를 뒤집어쓰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때 사내를 등지고 오두막집 모퉁이로 달려가
벽에 기대어두었던 자신의 사냥용 라이플을 집어 들고 있었습니다.
사내의 몸에서 보랏빛 빛이 일었습니다.
사냥꾼은 공포에 질려 빛의 중심으로 라이플을 몇 발 발사했습니다.
그리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사냥꾼들이 기름을 짜서 모아놓은 나무통이 쌓여있는 구덩이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무통 하나가 그의 몸무게와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부서졌습니다.
그의 어깨까지 통속에 빠져 기름 범벅이 되었습니다.
사냥꾼은 허우적대며 기름통에서 빠져나와 다시 중심을 잡았습니다.
누런 기름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 순간 그의 항문에 엄청난 아픔이 엄습했습니다.
그 쇠꼬챙이는 사냥꾼의 항문을 뚫고 들어가
등 근육을 꿰고 척추를 박살 내면서 목 언저리의
등 쪽 한가운데에서 피를 튀기며 튀어나왔습니다.
그의 항문에서 핏덩어리들이 기름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으아아아아악!"
사냥꾼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를 꿰찬 쇠꼬챙이를 들고 있는 것은 사냥꾼의 두 배정도 되는 신장을 가진
거대한 덩치의 갑옷 덩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쇠꼬챙이에 꿰인 아픔은 정신을 잃게 만들 정도로 극심해졌습니다.
기사는 그를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는 그릴 쪽으로 집어던졌습니다.
정확하게 모닥불 위에 떨어진 사냥꾼의 몸 위로
시뻘건 불길들이 그의 피부에 묻은 기름을 뜯어먹기 위해 들러붙었습니다.
사냥꾼은 고통에 찬 절규를 노래하면서 뜨거운 불길을 떼어내기 위해
사방팔방 미친 듯이 몸을 굴렸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기름을 한껏 머금은 그의 옷과 피부는 불길을 끌어당겼고,
불길들은 신나게 타올랐습니다.
주변으로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속에서 맹수들이 하나둘씩 피 냄새를 맡고 모여들어
풀숲에 숨어서 사냥꾼이 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기사는 한 걸음 한 걸음 사냥꾼에게로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사냥꾼의 울부짖음이 잦아들고, 움직임이 꺼져 갈 때쯤,
기사는 가볍게 쇠꼬챙이를 집어 들었습니다.
열이 전도되어 굉장히 뜨거울 것임에도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습니다.
그의 복부에서 쩌억 소리가 나며 이빨 장식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포식동물의 주둥이처럼 낮게 우는 소리를 내면서
벌써부터 침 같은 걸쭉한 타액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광견병에 걸린 미친개가 피 냄새에 홀려 침을 질질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기사는 마치 할복하듯 쇠꼬챙이를 자신의 활짝 열린 복갑 쪽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이빨 장식 안쪽에서 크르릉하는 귀에 거슬리는 동물의 낮은 포효 같은
울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천천히 쇠꼬챙이를 뽑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좀 전에 그 꼬챙이에 꿰어있던 불타는 사냥꾼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꼬챙이가 바닥에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에도 풀숲의 맹수들은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냥꾼의 죽음을 좀 더 지켜보려는 듯
한 치의 깜빡임도 없이, 눈깔들은 기사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사는 잠깐 동안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처럼 멀거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육중한 발 구름 소리가 낮게 산을 울렸습니다.
맹수들은 한참 그렇게 그 장소를 지키다가 하나둘씩 사라져 갔습니다.
맨 마지막엔 그 사냥꾼에게 새끼를 잃었던 어미 호랑이 한 마리만이 남아있었습니다.
곧 어미 호랑이도 몸을 돌려 숲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 밤의 여신 녹스의 시간이 숲으로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 마을에서는 여전히 늑대고기와 개고기를 먹습니다.
하지만 사냥개를 잡아먹는 풍습만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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