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Ψ~지옥기사 설화집~Ψ -6- [투구를 쓴 군인](성인동화, 잔혹동화)

by 헬나이트 2019.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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Ψ~헬나이트 설화집~Ψ

-6-

[투구를 쓴 군인]

 

 

 

 

 

옛날 옛날

한 마을에

세 친구가 살았습니다.

한 친구는 장사꾼이었고,

한 친구는 판사였습니다.

한 친구는 군인이었지요.

장사꾼 친구와 판사 친구는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였지만,

군인 친구는 가난했습니다.

가끔 두 친구는 가난한 군인 친구를 몰래 흉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사람은 자신들의 운을 시험해 보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날,

장사꾼 친구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가 막 마을 밖 언덕 너머를 지나고 있을 때,

다 죽어가는 나무 둥지 아래에 한 사내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키 큰 사내여, 당신은 왜 거기 누워 있습니까?"

 

장사꾼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 배고파 죽겠다. 으..."

 

그 키 큰 사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뭐 먹을 것 좀 없냐? 값은 치를 테니까, 먹을 것 있으면 나한테 팔아."

 

장사꾼 친구는 자신의 여행 가방 안에 육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내게 육포 조각이 좀 있소. 그걸 팔겠소."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한 조각에 금화 다섯 개."

 

"뭐라고? 이 빌어먹을 놈이!"

 

키 큰 사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검집으로 장사꾼 친구를 마구 때려 패 죽였습니다.

 

 

두 번째 날,

판사 친구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가 막 마을 밖 언덕너머를 지나고 있을 때,

다 죽어가는 나무둥지 아래에 한 사내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키 큰 사내여, 당신은 왜 거기 누워 있습니까?"

 

판사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 배고파 죽겠다. 으..."

 

그 키 큰 사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뭐 먹을 것 좀 없냐? 값은 치를 테니까, 먹을 것 있으면 나한테 팔아."

 

판사 친구는 자신의 여행 가방 안에 말린 생선 조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내게 말린 생선 조각이 좀 있긴 하오."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미안하지만 난 그걸 당신에게 팔지 않을 것이오.

 이건 내가 여행하는 동안 먹어야 할 식량이고,

 또 내겐 당신에게 도움을 줘야할 어떠한 법적 의무도 없소.

 그냥 난 내 갈길 가겠소."

 

"뭐라고? 이 빌어먹을 놈이!"

 

키 큰 사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검집으로 판사 친구를 마구 패 때려죽였습니다.

 

 

세 번째 날,

군인 친구가 마을을 떠났습니다.

그가 막 마을 밖 언덕 너머를 지나고 있을 때,

다 죽어가는 나무 둥지 아래에 한 사내가 누워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키 큰 사내여, 당신은 왜 거기 누워 있습니까?"

 

장사꾼 친구가 물었습니다.

 

"아 존나 배고파 죽겠다. 으..."

 

그 키 큰 사내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뭐 먹을 것 좀 없냐? 값은 치를 테니까, 먹을 것 있으면 나한테 팔아."

 

군인 친구는 자신의 여행 가방 안에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이 있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내게 말라비틀어진 빵 조각이 좀 있소."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이 빵은 너무나 보잘것없어서 돈을 받고 팔만한 값어치가 없소.

 그냥 좀 나눠드리겠소."

 

"뭐라고? 이 빌어먹을 놈이!"

 

키 큰 사내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에 있던 검집으로 군인 친구를 마구 패려다가 멈추었습니다.

 

"그냥 준다고?"

 

"네, 그렇소이다."

 

"허."

 

키 큰 사내는 검집을 내려놓았습니다.

군인은 말라비틀어진 빵조각을 키 큰 사내에게 주었습니다.

두 사람은 빵조각을 함께 먹으면서 언덕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자넨 어디로 여행을 떠나는 거지?"

 

키 큰 사람이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서로의 운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길을 떠났소."

 

"아 정말 할 짓이 없었구나. 그래, 네 운은 어떤 것 같으냐?"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군인이 턱을 긁적이며 대답했습니다.

 

"흠, 좋아. 그럼 나와 내기를 하자."

 

키 큰 사내가 씩 웃으며 말을 꺼냈습니다.

 

"내가 투구를 하나 주마.

 이 투구에서는 금화가 계속해서 나온단다.

 그걸 쓰고 해와 달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어섰다 졌다를 반복한 날,

 여기 이곳에서 나와 처음 만났던 그 죽은 나무 아래에서 만나자.

 하지만,

 넌 그동안

 투구를 벗어서도 안 되고,

 옷을 갈아입어서도 안 되고,

 몸을 씻어서도 안 되고,

 손톱과 발톱을 길러야 하며,

 면도를 하거나 이발을 해서도 안 된다.

 신에게 기도를 해서도 안 되지.

 이 중에서 하나라도 어기면 내기에서 내가 이기는 거야.

 네가 이기면 죽을 때까지 부와 명성과 행복함을 누리게 해 주마.

 대신,

 내가 이기면 네 영혼을 가져가겠다."

 

"좋습니다."

 

군인이 흔쾌히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키 큰 사내는 옆구리에 걸고 있던 볼품없는 투구를 들더니

투구 안에 손을 집어넣어 또 다른 투구를 꺼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이건 내 거고, 이게 네가 쓸 투구다."

 

군인의 투구는 좀 더 멋있긴 했지만

더 투박하고, 더 무섭게 생긴 투구였습니다.

군인은 예전에 투구를 써본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다시 투구를 썼습니다.

 

"이야, 멋진걸!"

 

키 큰 사내가 낄낄거리며 군인의 어깨를 툭 하고 쳤습니다.

 

"금화가 나온다고 하셨는데 금화는 어디에 있나요?"

 

"아 그건, 가볍게 투구 이마를 탁 치면 옆 틈에서 금화가 똑 떨어질 것이다."

 

군인은 손을 올려 투구 이마를 탁 하고 쳤습니다.

그러자 양쪽 귀 부분에서 금화가 똑, 똑 떨어졌습니다.

 

"정말 신기한 투구로군요."

 

"당연하지 내거니까."

 

두 사람은 어느덧 다음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자 이제부터 나는 다른데 볼일이 있어서 해어져야겠구나."

 

"저는 그럼 제 여행을 계속하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그 장소에서 또 보자고."

 

키 큰 사내는 가벼운 인사만을 남겨놓고는 휘적휘적 골목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군인은 투구를 쓴 채, 마을 선술집을 찾아갔습니다.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여기 맥주 주세요."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제야 술집 주인은 활짝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맥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군인은 선술집 위층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그는 잠을 잘 때도 투구를 벗지 않고 잤습니다.

 

 

날이 밝자 군인은 잠에서 깨어나 짐을 챙겨서 다음 마을로 향했습니다.

다음 마을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군인이다. 군인이다.

 전쟁의 투구를 쓴

 군인이 우리 마을에 왔다.

 무슨 일로 왔을까?"

 

군인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머물 선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여기 과일주 주세요."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제야 술집 주인은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과일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군인은 선술집 위층 침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쉬고 싶었지만 그대로 투구를 벗지 않고 잤습니다. 

 

 

날이 밝자 군인은 잠에서 깨어나 짐을 챙겨서 다음 마을로 향했습니다.

다음 마을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동자다. 노동자다.

 노동의 투구를 쓴

 노동자가 우리 마을에 왔다.

 무슨 일로 왔을까?"

 

군인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머물 선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굳은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여기 육포주 주세요."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제야 술집 주인은 웃으며 작게 대답하고는 육포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군인은 선술집 위층 침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투구를 벗고 쉬고 싶었지만 그대로 잤습니다.

 

 

날이 밝자 군인은 잠에서 깨어나 짐을 챙겨서 다음 마을로 향했습니다.

다음 마을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어 노래를 불렀습니다.

 

"거지다. 거지다.

 동냥의 투구를 쓴

 거지가 우리 마을에 왔다.

 무슨 일로 왔을까?"

 

군인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머물 선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여기 증류주 주세요."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제야 술집 주인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증류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군인은 선술집 위층 침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깨끗하게 씻은 다음 투구를 벗고 머리를 깎고 쉬고 싶었지만 그대로 잤습니다.

 

 

날이 밝자 군인은 잠에서 깨어나 짐을 챙겨서 다음 마을로 향했습니다.

다음 마을에 들어설 때,

입구에서 놀고 있던 꼬마들이 그에게서 달아나며 소리쳤습니다.

 

"돌림병이다. 돌림병이다.

 질병의 투구를 쓴

 돌림병이 우리 마을에 왔다.

 무슨 일로 왔을까?"

 

군인 친구는 어깨를 으쓱 하고는 머물 선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여기 우유 한 잔 주세요."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술집 주인은 대답은커녕 출구를 가리키며 소리쳤습니다.

 

"당신 같은 거지에게 팔 우유는 없소, 당장 나가시오."

 

"금화라면 얼마든지 있습니다. 웃돈을 드리지요."

 

"필요 없어, 꺼지라니까."

 

군인은 결국 술집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잠시 동안 자신의 신세가 비참해서 투구를 벗어버리고 다시 술집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보란 듯이 금화를 보여주고 싶어 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가 간 곳은 부랑자들이 모여 있는 마을 다리 밑이었습니다.

부랑자들은

 

"어허허허, 투구 쓴 거지일세."

 

라면서 그를 반겨 주었습니다.

군인 친구는 이마를 탁탁 쳐서 나온 금화들을 부랑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들은 행복해했으며, 자신들의 손님을 잘 대접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해와 달이 자리를 교대한 후,

어느 날,

군인 친구는 또다시 한 마을에 다다랐습니다.

그가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놀고 있던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며 소리쳤습니다.

 

"죽음이다. 죽음이다.

 파멸의 투구를 쓴

 죽음의 신이 우리 마을에 왔다.

 무슨 일로 왔을까?"

 

군인 친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머물 선술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나이 든 술집 주인이 투구를 쓴 채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보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여기 물 주세요. 돈은 원하시는 만큼 드리겠습니다."

 

군인은 의자에 앉아 이마를 탁 쳐서 금화를 떨어뜨렸습니다.

그러나 나이든 술집 주인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겁먹지 마십시오. 저는 죽음의 신도 아니고, 괴물도 아닙니다.

 단지 목마른 나그네일 뿐입니다."

 

그가 부드럽게 말하며 금화들을 보여주자,

나이 든 술집 주인은 그제야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 잔을 내주었습니다.

그는 목을 축인 후

위층에 있는 침실로 들어가 쉴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누워보는 편안한 침대였습니다.

그가 막 잠을 청하려고 할 때,

옆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어떤 할아버지의 음성이었는데 절망스럽게 들렸습니다.

군인은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 옆방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에 계십니까? 옆방 사람입니다."

 

곧 문이 열리고 안에는 한 노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옆방에서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왔습니다.

 무슨 괴로운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노인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 실은 여행 중인데, 이 여관에서 하루 묵었다가 돈을 몽땅 도둑맞아 버렸소.

 그래서 여관에서 묵은 값을 치러야 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어서 여기에 일주일이나 있었다오.

 돈은 못 찾고, 여관비는 자꾸만 올라가니 차라리 죽으려 하오."

 

"그런 문제라면 제가 해결해 드리지요."

 

군인 친구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며 일어나서 투구 이마를 탁 쳤습니다.

그러자 양쪽 귀 부분에서 금화들이 똑똑 떨어졌습니다.

 

"이 금화들을 드릴 테니, 오늘 밤은 편히 쉬시고, 내일 아침 값을 지불하세요."

 

"오오.. 당신은 천사입니까?"

 

"아닙니다.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니오.

 부디 날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난 할 수 없으니. "

 

군인은 서글프게 말하고는 노인의 방을 나와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은 마치 귀신같았습니다.

괴기한 투구 틈으로 덥수룩한 머리칼과 수염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온 데다가,

그림자 진 투구 안쪽에서 그의 빛나는 두 눈동자는 광인의 번뜩이는 눈매 같아 보였습니다.

그는 침울한 기분이 되어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날이 밝았습니다.

군인 친구가 막 방에서 나오려는 찰나, 옆방의 노인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어제는 고마웠소, 덕분에 방값을 다 지불했소."

 

"그거 다행이군요."

 

"날 따라오시오. 자네가 괜찮다면 내 딸들을 소개해 주지."

 

"딸들을?"

 

"그렇소, 내겐 세 딸이 있는데, 그중 하나를 자네와 맺어주고 싶소.

 자네같이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 사위가 될 자격이 있지."

 

그는 노인을 따라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노인이 집에 도착하자, 그의 세 딸들이 그를 반겼습니다.

노인은 큰딸에게 군인 친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큰 딸은 무서운 투구를 쓴 군인을 두려워했습니다.

노인은 둘째에게 군인 친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딸은 지저분한 군인을 무시했습니다.

노인은 막내에게 군인 친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막내딸은 아버지를 도와주었다는 말을 듣고 좋다고 말했습니다.

군인 친구와 막내딸은 부부가 되어 가정을 꾸렸습니다.

군인은 남을 돕는 일이 아니면 자신을 위해 금화를 쓰지 않았습니다.

막내딸의 두 언니는 동생을 놀렸습니다.

 

"네 남편은 괴기하고 냄새나는구나."

"네 남편은 가난하고 냄새나는구나."

 

마을에도 막내딸의 남편이 이상한 투구를 쓴 사람이라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수군거렸습니다.

 

"저 집 막내딸은 복도 없지, 어찌 저런 남편을 얻었을까?"

 

"거기다가 가난하기까지 하니, 쯧쯧."

 

옆집 아주머니는 그런 막내딸이 안쓰러웠는지 가끔 놀러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은 막내딸 내외를 놀리곤 했습니다.

그리고는 따돌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군인이 짐을 꾸리며

자신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더럽고 무섭지만, 조금만 기다리시오.

 해와 달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어섰다 졌다를 반복한 그날이 지나면,

 내 다시 돌아오리다."

 

그는 그렇게 말 한 뒤 또다시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그는 온 마을을 돌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금화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병이 난 사람들에게 자신의 금화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대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값나가는 물건들을 조금씩 받아서 모았습니다.

 

어느덧

키 큰 사내와 약속했던

해와 달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일어섰다 졌다를 반복한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 앞 언덕의 죽어가는 나무 둥지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막 졸기 시작했을 때,

낯익은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결국 내기에서 이기셨군."

 

그가 고개를 들자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키 큰 사내가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냄새가 좀 심하긴 하지만, 자네의 승리 구만. 나는 패배했고."

 

"패배라뇨,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내기일 뿐이잖소."

 

그는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키 큰 사내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좋아, 이제 그 더럽고 추한 투구는 가져가마.

 넌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제부터는 내 축복 아래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네 영혼을 가져가려고 했었는데, 실패로군."

 

"고맙습니다."

 

키 큰 사내는 그에게서 투구를 벗겨주었습니다.

머리털과 턱수염이 뒤엉켜 투구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으 냄새, 일단 어디 가서 좀 깨끗하게 씻어."

 

"그러지요. 껄껄"

 

"자, 나는 또 바쁜 일이 있어서 사라진다.

 아마 또 만날 일이 있을 거야."

 

그는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군인 친구는 언덕을 내려와

목욕탕에 들러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금화와 바꾼 값나가는 물건들을 다시 팔아 금화로 바꾸었습니다.

깨끗해진 군인 친구는 많은 금화들을 챙겨서

자신의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장인어른의 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가 장인에게 인사했습니다.

 

"뉘쇼?"

 

나이를 좀 더 먹은 장인이 미간을 좁히며 그를 쳐다보았습니다.

 

"접니다 장인어른, 당신의 사위가 돌아왔습니다."

 

"난 당신같이 잘 생기고 멋있는 사위는 없는데,

 다만, 괴물같이 생긴 투구를 쓰고

 냄새가 지독하게 나지만

 마음만은 선한 사위는 한 명 있지."

 

"그게 바로 접니다. 아버님!"

 

그제야 두 사람은 반가움에 뜨거운 포옹을 했습니다.

막내딸이 현관 밖으로 나와 자신의 남편을 맞았습니다.

그녀의 두 언니들은 돌아온 군인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네 남편은 잘 생기고 기품이 있구나."

"네 남편은 부자에다 기품이 있구나."

 

그녀들은 동생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마을에도 막내딸의 투구 쓴 남편이 투구를 벗고 부자가 되어 돌아왔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큰 언니와 둘째 언니들은

옛날에 아버지가 자신들에게 그 남자를 소개해 줄 때,

그와 혼인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습니다.

 

두 언니는 그날 밤

너무나 자신들 신세가 초라해 보였던 나머지,

각자의 방에서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장인어른과 그의 사위와 그의 막내딸은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이후,

마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막내딸을 도와주러 오던 옆집 아주머니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의 남편이 병을 몰고 왔다면서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군인은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는 한 편으로는 그 키 큰 사내가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지 못하자

마을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갑자기 군인 친구의 집 대문을 누군가가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안녕하신가."

 

거기에는 키 큰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군인은 그를 집 안으로 들여보내었습니다.

그리고는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다 알고 있어. 나를 의심하고 있었지?"

 

대뜸 그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군인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마구 죽어가고 있고, 저는 이제 악마로 몰릴 지경입니다."

 

키 큰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습니다.

 

"네 아내는 잘 있느냐?"

 

"친하던 옆집 아주머니가 돌아가셔서 조금 침울해하고 있습니다."

 

"으흠... 친하다라..."

 

사내는 턱을 긁적였습니다. 그는 부엌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더니

의자를 빼서 걸터앉았습니다.

 

"와서 앉아, 내가 거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지."

 

군인은 사내의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키 큰 사내는 양다리를 꼬더니 탁자 위에 턱 하고 올렸습니다.

 

"그러니까 자넨 내가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지 아닌지가 궁금한 거지?"

 

"네, 그렇습니다."

 

"내가 왜 저들을 병씩이나 걸리게 해서 죽이겠냐?

 칼로 썰고 다니는 게 훨씬 빠르고 쉬운데."

 

군인 친구는 멍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더러운 면이 있어,

 남위에 군림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지.

 다른 사람 위에 올라앉아서 그들을 내려다보면서 그걸 즐기는 거야.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잘 살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해.

 남들 위에 살고 싶어 하지.

  바로 이 동네에 사는 어중이떠중이들이랄까."

 

"무슨 소린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군인은 이마를 짚었습니다.

끈적하게 베어 나오는 식은땀의 감촉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유일까?

 

"잘 들어.

 그들은 밑바닥에 있는 인간들을 보면서 자위를 하곤 해,

 '휴, 그나마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났지, 불쌍한 사람들.'

 그렇게 자신보다 못한 인간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얻고 살아가는 거지.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인 거야.

 자신의 삶의 활력소이자 위안인 거야.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의 불행함을 양분으로 삼아서."

 

사내는 식탁에 팔꿈치를 턱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군인의 얼굴을 가리켰습니다.

 

군인은 소름이 끼쳤습니다.

 

"바로 자네 같은 인간이지, 아니 자네 같았던 인간이지.

 자네같이 찌질하고 더러운 인간을 보면서 이 마을 사람들은 삶의 활력소를 얻었단 말이야.

 그 거지 같은 삶에 만족하고 안주하면서."

 

"하지만 난... 난 지금은..."

 

"그렇지,

 넌 지금 돈 많고, 잘 생기고, 아내도 예쁘고, 말도 잘 들어. 다 좋잖아?

 바로 하루 만에 그렇게 된 거야.

 바로 하루 만에 인간들이 깔보고 불쌍해하면서 삶의 위안을 얻게 해 주었던

 하찮은 밑바닥 인간이 갑자기 없어진 거지."

 

쾅!

 

그 대목에서 키 큰 사내는 군인을 가리키고 있던 손을 들어 식탁을 주먹으로 내려쳤습니다.

 

"그러니까 그 인간들 기분이 어떻겠어? 상상이 되지?

 엄청 배알이 뒤틀렸을 거야.

 어제까지만 해도 나보다 못났던 얼간이가,

  빵 심부름이나 하던 종자가 다음날 친위대장이 돼서 돌아온 격이니."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럼... 그 사람들이... 결국에는... 스스로..."

 

"그렇지, 혼자 배 아파서 끙끙대다가 죽은 거지.

 엄청난 공허함이 몰려왔을 테지.

 결국엔 배알이 뒤틀려서 뒈져버렸잖아."

 

군인은 순간 큰 상심에 빠져 이마를 식탁 쪽으로 숙였습니다.

어지러웠습니다.

모든 것이 비틀린 것 같았습니다.

언제 옆으로 왔는지 이번엔 그의 바로 옆 귓가에서 키 큰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그러지 마.

 사는 게 다 그런 것 아니겠나.

 네 아내는 착한 여자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다 착한 사람들이다.

 그걸 위안으로 삼도록 해.

 네 아내와 잘 지내고,

 네 이웃들과 잘 지내라.

 그걸로 충분하다.

 네 이웃들은 선한 이웃을 두고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다."

 

키 큰 사내는 상심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군인 친구를 뒤로 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 쪽으로 가서 문을 열었습니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뿌연 빛을 흩뿌리고 있었습니다.

허연 달빛이 방안까지 들어와 키 큰 사내의 그림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군인은 그 그림자가 마치 귀신과도 같아 보였습니다.

 

"잘 살게,  떠돌이 기사의 축복을 받은 친구여."

 

문은 닫혔습니다.

고요함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달빛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군인은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고 있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그의 아내였습니다.

 

"오, 여보 방금 그 사람은 누구지요?"

 

"설마 당신 그가 하는 이야길 들었소? 우리 이야길 들었소?"

 

군인은 당황해서 물었습니다.

아내는 부드럽게 다가와 식탁 의자에 힘없이 앉아 있는 그녀의 남편 옆에 섰습니다.

 

"네, 죄송해요. 아까 쾅 소리를 듣고 나와 봤어요."

 

군인은 키 큰 사내가 그때 일부러 아내를 불러내기 위해 식탁을 쳤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당신은 그걸 듣지 말았어야 했어. 아아."

 

그는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살며시 다가와 군인 친구의 목을 끌어안았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여보. 그 이상한 저주가 당신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으니 된 거예요.

 절 용서하세요. 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오히려 괴로웠어요.

 사람들이 당신이 질병을 옮겨왔다고 손가락질할 때마다 전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지요.

 심지어는 그들이 맞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어요."

 

군인도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기대었습니다.

 

"그래...

 그걸로 된 거요.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할 수만 있었다면... 나도 그들을 도왔겠지...

 하지만 이건...

 그래...

 그 불쌍한 사람들 몫까지 행복하게 삽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달빛은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달빛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키 큰 사내의 이빨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얼간이들아, 가자.

 지옥의 기사를 따라서

 죽은 자들의 지옥으로 가자.

 영원히, 영원히.

 나는 내가 지는 내기는 절대 안 하니까."

 

수십, 수백의 마을 사람들의 영혼들이

망령처럼 힘없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흥겨워 보였습니다.

 

 

-fin.                          

 

 

 

덧붙임> 

이 이야기는 독일 설화 Bearskin에서 따온 것입니다. '곰 가죽'이라는 이 설화에서는 본래

'키 큰 사내'가 등장하지 않고 '악마'가 등장하여 군인에게 용맹함을 증명하라고 하여 곰을

죽이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가죽을 쓰고 7년 동안 가죽을 쓰고, 씻지 않고, 신께 기도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 내기를 합니다. 결국 그는 흉물스러운 돼지 같은 곰 가죽을 쓴 채 착한

아내를 만나 행복하게 삽니다. 악마는 그의 영혼을 가져가는 대신, 자신의 동생을 시샘하다

자살한 두 언니의 영혼을 가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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