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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노블(소설)

Ψ~지옥기사 설화집~Ψ -7- [백색가면](성인동화, 잔혹동화)

by 헬나이트 2020.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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Ψ~헬나이트 설화집~Ψ

7

[백색 가면]

 

정직한 사내는 거짓말을 잘 못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정직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면

사람들은 그의 표정을 보고 그의 심정을 알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정직한 사내는 그게 늘 신경 쓰였습니다.

싫으면서도 좋다고 해야 할 경우에 그는 자신의 싫은 감정을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가 사실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했지요.

그렇게 해서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었던 정직한 사내는

매일 밤 자신의 고민을 언덕 위에 떠있는 달님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달님 달님,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어찌하긴 뭘 어찌해?"

 

그는 깜짝 놀라 허옇게 빛나고 있는 달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마침내 달님이 정직한 사내의 이야기에 대답을 해 준 걸까요?

그렇지만 달님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습니다.

다만 정직한 사내의 옆에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검은 풀숲에서 허리엔 권총과 칼을 차고, 옆구리엔 투구를 비껴 낀 한 키 큰 사내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때로는 절망의 신이고, 때로는 축복의 신이다. 그건 모두 네게 달려있지."

 

 

키 큰 사내는 무릎 꿇고 있는 정직한 사내의 맞은편에 주저앉았습니다.

 

"아주 한심한 고민을 읊더구나."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심각합니다."

 

"그게 다 배가 불러서 그래 한 열흘 정도 굶고 나면 생각이 바뀔걸.

 내일 끼니가 고민인 사람들의 고민과 너의 고민은 무게가 달라."

 

정직한 사내는 뜨악했습니다.

그는 허리춤의 리볼버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을 이었습니다.

 

"네 고민을 들어주지. 하지만 난 계속 지켜보고 있을 거야."

 

키 큰 사내는 다리사이에 껴놓은 투구 속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뒤집어진 투구 안쪽 눈 부분에서 붉은 안광이 세어 나오는 걸 본 것 같았습니다.

그는 투구 속에서 하얀색 가면을 꺼내었습니다.

 

"이걸 네 얼굴에 뒤집어써, 그럼 해결될거야."

 

정직한 사내는 조심스럽게 흰 가면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가면의 겉면에는 희미하게 웃는 표정이 새겨져 있을 뿐 별 다른 특징은 없었습니다.

그는 가면 안쪽의 페인 부분으로 천천히 얼굴을 가져갔습니다.

마치 흰 가면은 살아있는 것처럼 가볍게 그의 얼굴을 빨아들이더니

무언가 피부를 훑고 가는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윽, 이게..."

 

정직한 사내는 흰 가면을 벗으려고 했지만

마치 끈적끈적한 껌에 달라붙은 것처럼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벗지 마, 좀 기다려봐. 내가 거울을 보여주지. 얼간이 같지만 잘 어울리는걸?"

 

그는 키 큰 사내가 보여주는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가 뒤집어썼던 흰색 가면은 온데간데없고, 웃고 있는 자신의 표정만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내 얼굴이잖아?!"

 

그는 못 믿겠다는 듯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습니다.

하지만 손 끝에는 흰 가면의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이 만져지는 것이었습니다!

 

"그 표정은 거짓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저 평소와 같은 네 얼굴인 줄 알겠지.

 네 고민은 끝난 거야."

 

정직한 사내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정직한 사내의 표정을 봐서는 그의 심정을 모를 것임에 분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냐 괜찮아. 그리고 하나 더 중요한걸 알려주지."

 

그는 갑자기 정직한 사내의 멱살을 잡아 확 끌어당겼습니다.

 

"내 말 똑똑히 들어, 이 가면은 하루 이상 쓰고 있으면 안 된다.

 넌 반드시 매일 밤 잠들기 직전 신께 기도를 올릴 때 이 가면을 벗어야 해.

 반드시 꼭, 하루에 한 번, 이 물건을 네 몸에서 떼어놔."

 

정직한 사내는 갑작스러운 키 큰 사내의 불호령에 그만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언덕을 달려 내려갔습니다.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자신의 집에 도착해 대문을 걸어 잠그고 거기에 기대서 주저앉았습니다.

모든 게 그저 밤의 여신이 장난친 꿈같았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헐떡이며 자신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 가면은 소름 끼칠 정도로 차갑고 매끄러웠습니다.

 

 

* * *

 

 

정직한 사내는 밤새 한 숨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 가면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밤에도 등불을 켜놓고 바로 옆에 가면을 올려 두고는

그 가면이 혹시나 살아 움직이지는 않는지 힐끗힐끗 살폈습니다.

다행히도 가면은 조금 힘을 주니 쉽게 벗겨졌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피곤함에 겨우 일어나 아침밥을 먹었습니다.

그가 식사를 다 마치고 정리를 끝냈을 즈음,

한 마을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 아저씨는 정직한 사내에게 일을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사내는 조금 피곤했지만,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혹시 이 아저씨가 내 표정을 보고 실망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조심스럽게 흰색 가면을 썼습니다.

아저씨는 정직한 사내와 헤어지면서

 

"그동안 부탁을 할 때면 가끔 자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니 정말 고맙네!"

 

이 소리를 들은 정직한 사내는 정말 기뻤습니다.

이제 사람들의 부탁을 들어줄 때면 더 이상 자신의 표정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를 너무나 즐겁게 보냈습니다.

 

밤이 오자 잠자리에 들기 직전 그는 다시 가면을 벗어놓았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더 이상 그 가면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이제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이제 흰색 가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집 안에서도 가면을 쓰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사내는 여자 친구를 만날 때도 가면을 쓰고 갔습니다.

그는 완전히 그 가면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면을 쓰고 있어도 전혀 불편한 점은 없었고,

오히려 사람들과 더욱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자신에게 이와 같은 기회를 안겨준 흰 가면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는 가면을 벗는 것조차 귀찮아졌고

키 큰 사내가 해 주었던 경고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깜빡하고 가면을 쓴 채로 잠에 빠져 은근히 놀랐었지만,

그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가면이 살아 움직이지도 않았고, 가면이 멋대로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별것 아니구먼.'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직한 사내의 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우리 헤어져요."

 

사내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 더 이상 당신을 못 만날 것 같아요."

 

"..."

 

"요즘 당신을 만나다 보면 기분이 이상해."

 

"뭐라고?"

 

"내가 당신을 사랑했던 이유는 당신의 진실되고 정직했던 마음... 그 마음이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당신에 대한 믿음이 다 한 것 같았어. 그래서 이 말을..."

 

정직한 사내는 갑자기 숨이 막혔습니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사내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배어 나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복통에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런 그의 얼굴을

흰 가면이 덮고 있었습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매끄러운 흰 가면은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가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그의 심정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 최근에 당신과 만나면서 확신할 수 있었어요.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당신을..."  

 

 

* * *

 

 

정직한 사내는 비틀거리면서 어두워진 거리를 걷고 있었습니다.

가로등 불 빛을 등진 그의 앞으로

축 늘어진 사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는 여자 친구와 어떻게 헤어진지도 모른 채

오로지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옮겼습니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사내는 또다시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습니다.

마침내 집 현관의 차가운 문고리의 촉감이 손 끝에 전해져 왔습니다.

그는 거의 쓰러지다시피 하면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한참을 닫힌 현관문에 기대어 숨을 돌리던 정직한 사내는

힘겹게 일어나 거울이 있는 세면실로 달려갔습니다.

세면대에 몸을 기댄 채

그는 거울을 보았습니다.

건너편에는 여전히 평온하게 싱글싱글 웃고 있는 자신이 보였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공포에 질렸습니다.

 

"으아아아아악!!"

 

그는 비명을 지르며 정면에서 얼굴을 들이대고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힘껏 때렸습니다.

와장창 소리가 나면서 거울이 깨졌고,

파편들이 그의 주먹에 박혀 피를 흩뿌렸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벽에 붙어있는 거울 조각들은 웃고 있는 정직한 사내를 계속해서 비추었습니다.

수십의 크고 작은 그의 얼굴들이 조소를 머금은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과 공포에 비명을 지르며

미친 듯이 벽에 붙은 유리 조각들을 긁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가락 끝 살은 갈리고 갈려서 너덜너덜해져 살점들이 뚝뚝 나가떨어졌습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습니다.

그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그제야 가면을 벗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의 마지막 조각이 그의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그는 피범벅이 돼서 싱글싱글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워 미칠 지경이었지만,

가면을 벗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그나마 온전한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턱끝의 가면 말단 부분을 밀어냈습니다.

그러나 매끄러운 가면의 끝 부분은 아무리 힘을 주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마치 피부에 착 달라붙은 양 일말의 틈조차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온 힘을 다 했습니다.

꽉 다문 이 사이에서 신음소리가 끙끙 세어 나왔습니다.

가면은 절대로 벗겨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힘을 주다가 지친 정직한 사내는 멍한 표정으로 양손을 힘없이 떨구었습니다.

이제 영원히 이 가면을 쓰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바로 그때였습니다.

 

 쾅 쾅 쾅!!

 

조용하던 현관문을 누군가가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쾅 쾅!!

 

그는 당황하여 미친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온통 피바다에

자신의 손은 너덜너덜해져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깨진 거울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쾅 쾅 쾅!!

 

그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내 여자 친구가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폭로한 게 틀림없어!!'

그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비밀을 알아챈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비난할 거야!!'

 

 쾅 쾅 쾅 쾅!!

 

불쌍한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온통 붉은 피로 물든 그에게서 유일하게 깨끗한 곳은

흰 가면뿐이었습니다.

하얀 가면의 매끄러운 표면에는

그 어떤 얼룩이나 핏자국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쾅 쾅!!

 

현관문은 계속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것은 절망의 심판대의 망치처럼 울리며

그에게 판결을 강요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이 가면을 얼른 떼어내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이 정직한 사내의 비밀을 이미 알아버렸으니,

얼른 이 소름 끼치는 가면을 얼굴에서 떼어내 숨겨버리면 되니까요.

그는 떨리는 피투성이 손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거울 조각을 서서히 집어 들었습니다.

유리조각이 으드득 소리를 내며

푹신한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습니다.

뜨끈한 검붉은 피가 스며 나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쾅 쾅 쾅!!

 

유리조각의 날카로운 절단면이 파르르 떨리며

흰 가면 아래로 드러난 그의 턱선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는 그 날카로운 도구로 자신의 턱선을 썰어내기 위해 깊게 찔렀습니다.

손바닥에서 베어 나온 피보다 더 검고 많은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걱서걱

 

쾅 쾅 쾅 쾅!!

 

유리조각 끝에 단단하고 꺼끌꺼끌한 그의 턱뼈가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미칠듯한 고통에 그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목구멍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습니다.

고기를 썰듯 그 도구는 피부 속에 깊이 박힌 채 조금씩 옆으로 움직였습니다.

울퉁불퉁한 유리조각의 날카로운 면이 그의 피부를 얼기설기 찢으며 검붉은 피를 뿜어냈습니다.

 

쾅 쾅 쾅!!

 

마침내 턱에서부터 긋기 시작한 유리조각의 끝은 그의 이마 정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피가 이마를 타고 내려오며 눈을 찔렀습니다.

한쪽 눈을 질끈 감은채 그는 다른 눈을 부릅떴습니다.

이 저주받은 흰 가면이 벗겨지는 것을 똑똑히 봐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쾅 쾅!! 쾅 쾅 쾅!!

 

그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곤 때문에 온몸이 나른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그때처럼 몸이 으스스해지면서 가라앉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는 관자놀이 근처까지 유리조각이 다가오자 뒤 온 힘을 다하여 턱 끝으로 그어 내렸습니다.

마침내 흰 가면이 그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정직한 사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부를 찢고 있었던 유리조각을 다시 들어 올렸습니다.

그는 가면이 벗겨진 자신의 본 얼굴을 보기 위해 몸을 기울였습니다.

 

쾅 쾅 쾅 쾅 쾅!!

 

사내의 비명이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잠식되어버렸습니다.

곧 짙은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현관문은 더 이상 짖지 않았습니다.

정직한 사내의 힘 없이 떨궈진 손가락 끝에서 세어 나온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며 아주 작은 물방울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현관문의 경첩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벌어졌습니다.

현관문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틈 사이로 나타난

키 큰 사내가 안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는 말했습니다.

"이제 끝났나~?"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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