Ψ~헬나이트 설화집~Ψ
-6-
[시체백작-2]
그가 편편해진 숲길로 몇 걸음 옮겼을 때,
눈앞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야, 이 노상강도 놈아. 언제 적 수법을 아직도 쓰고 있는 거냐?"
키 큰 사내는 검집에서 검을 반쯤 뽑아 들고 발로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툭툭 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흐음..."
사내는 턱을 긁적였습니다.
"설마 진짠가?"
그는 남자의 엎어진 몸을 발로 밀어 똑바로 뉘었습니다.
옆에 쭈그려 앉은 사내는
남자의 얼굴을 잠깐 들여다보더니 뺨을 세게 한 번 때렸습니다.
짝 소리가 꽤 크게 울렸습니다.
숲에 있던 새들은 깜짝 놀라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충격에 놀란 남자는 눈을 떴습니다.
"으..."
* * *
"제 이름은 '루카스 뮬러'입니다. '루카스'라고 부르십시오."
"안 물어봤어 세끼야."
그는 루카스에게 익힌 고기 조각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난 이름이 없어. 그래서 아무도 본래의 나를 부르진 못하지."
"밝히기가 곤란하시다는 말씀인가요?"
굶주림에 지쳐있었던 그 젊은 남자는 오랜만에 맛보는 구운 고기로 약간 들떠있었습니다.
그는 바닥을 짚었던 더러운 손이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고기를 잘게 찢어 먹었습니다.
"곤란하긴 뭐가 곤란해. 원래 없다니까."
키 큰 사내는 짜증을 냈습니다.
이래서 젊은 놈과 상대하는 건 짜증 난다니까.
"그럴 리가! 기사님 같아 보이시는데, 기사가 이름이 없다니요?"
"아... 그냥... 그런 거란다..."
사내는 짜증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루카스는 그가 불편해하는 만큼, 더 이상 캐묻지 않는 것이 예의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름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기사님은 어디로 가시는 길이 신지요?"
"그만!! 멍청한 놈!!
질문하는 건 나고, 대답하는 건 너다!!"
키 큰 사내는 코로 거친 숨을 깊이 몰아 쉬었습니다.
흥분을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이지요.
이번엔 그가 심호흡을 하며 물었습니다.
"그래... 너는 어디로 가는 중이었지?"
"아, 저는 시체백작의 저택을 찾기 위해 떠돌던 중이었습니다."
순간 루카스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뭐?! 시체백작을?? 아니 왜??"
사내는 미간을 좁히여 재촉하듯이 상체를 당겨 거리를 좁혔습니다.
"실은... 이 도시 거의 대부분의 토지를 장원으로 가지고 있는 영주가 바로 시체백작입니다."
"그렇군, 그렇군."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음에도, 중간에 이야기를 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시체백작이 이런 이상한 이름을 갖기 이전에,
그러니까 그가 좀 더 정상적인 이름을 갖고 있었을 시절, 사람들은 백작을 존경했었습니다."
루카스는 괴로운 듯 고개를 숙이고 이마에 양손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백작이 정말로 사랑했던 그의 아내가 죽어버렸습니다."
"저런."
"백작이 시체백작으로 불리게 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백작은 너무나도 슬펐던 나머지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합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은 천사와 계약을 했다고도 하는데... 아... 전, 모르겠습니다..."
루카스는 여전히 고통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눈꺼풀 위를 손으로 문질렀습니다.
"그가... 어떤 계약을 했냐 하면,
바로 사람 백명의 생명과 아내의 생명을 교환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군, 사람 백 명을 갖다 바치면 아내가 부활하는 거군?"
사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 여보였습니다.
"네 그래요.
그래서 백작은 그때부터 마을에 사는 사람들 중
한 가정을 무작위로 골라서는, 그 집의 가장 막내 자식을 저택으로 끌고 가곤 했습니다.
보름이 네 번 거치면 마을에선 어김없이 한 사람이 저택으로 사라졌어요."
"끔찍하군!"
사내의 표정이 더욱 심각하게 변했습니다.
"엊그제였습니다... 결국은... 저와 장래를 약속하기까지 했던 제 약혼녀가 그만..."
"..."
이제 키 큰 사내의 표정은 아주 오묘한 표정이 되어있었습니다.
"엊그제라고?? 네 약혼녀의 이름은 무엇이냐."
"예, '앨리제'입니다."
"씨팔."
키 큰 사내는 루카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게 중얼거리고는,
시체 하녀의 둔부를 더듬었던 손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슬며시 등 뒤로 숨겼습니다.
"네가 처한 상황이 네게 너무 가혹해 보이는구나!"
그가 위엄 있게 말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제 가슴은 비참하게 찢어질 지경입니다!"
"넌 그렇다면 네 약혼녀를 구해내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더냐."
"예, 그렇습니다! 제 손으로 반드시 구해낼 것입니다!"
키 큰 사내는 씨익 웃었습니다.
"좋다! 청년이여, 내 너를 도울 것이니, 너는 네 약혼녀를 찾게 될 것이다!"
"정말이십니까?
하지만 시체백작의 저택은 너무나도 복잡한 늪 속에 숨겨져 있어 저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꼬박 하루 종일을 늪 속에서 헤매다가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걱정 말거라. 내가 그 저택으로 너를 안내할지니,
너는 그곳에 도착할 지어다.
일어서라 비참한 청년아, 네 무기를 들어라."
루카스는 키 큰 사내의 독려를 받고 일어서서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습니다.
길지도 않고, 또 그리 짧지도 않은 적당한 길이의 초심자 연습용 검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늪지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늪에서 나온 수증기가 대낮에도 자욱한 안개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늪의 축축한 공기를 흡수하며 근처에 자라난 나무들은
햇볕을 잘 받지 못해 거뭇거뭇했습니다.
"아... 그 세끼 진짜... 결계 씨발..."
앞장서서 걷던 사내는 중간중간 한숨을 푹푹 내쉬며 피곤한 듯이 목 운동을 하곤 했습니다.
* * *
날이 점점 저물어 가면서 하늘엔 붉은 석양이 늪지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늪의 어두운 한 구석에서 낮잠을 자던 박쥐 떼들은
시장함을 참지 못하고 벌써부터 사냥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를 지나는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어느덧 그들 앞에는 뾰족하고 거대한 성과 같은 으리으리한 저택 한 채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시체백작의 저택!! 바로 여기군요!!"
"그래 씨발 여기가 그 빌어먹을 저택이지."
키 큰 사내는 아주 피곤해 보였습니다.
"자 그럼 들어가야지."
그는 철문의 해골 문고리를 잡고는 건성으로 세 번 두드렸습니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루카스는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습니다.
"저, 기사님 좀 더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나와 시체백작은 아는 사이거든."
"!!"
순간 루카스의 표정이 당황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이 남자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 오히려 의문이 생겼습니다.
미처 깨닫지도 못한 사이 이 자의 현혹에 말려들었던 걸까요?
"걱정마라, 난 널 방해하진 않는다. 오히려 조력자가 될 테지."
사내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말했습니다.
루카스는 일단은 그를 믿는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곧 정원이 나타나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이 고기가 썩는듯한 지독한 냄새는 뭘까요?"
"오, 아니지. 고기가 썩는 냄새가 아니고, 인간이 썩는 냄새라고 해야지."
그제야 정원에 썩은 고목처럼 서 있는 시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런 세상에, 우리 마을 사람들이잖아!"
루카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 쥐며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온몸은 전율로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 하느님, 이럴 수가, 신이시여. 어찌 이리도 가혹하십니까!
여기 이 죽은 자 들을 부디 가엾게 보살피시어 안식을 주십시오!"
그는 미친 듯이 기도했습니다.
"내 사랑, 나의 앨리제여,
오오... 그대마저 시체가 되어버렸는가. 설마, 그럴 리가. 제발 신이시여!"
그는 이를 악물고 눈을 꽉 감은채, 용기를 다시 얻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기사님, 부디 저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그녀를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십시오!"
"청년이여 용기를 내라! 너는 네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날 것이니라!
시체백작, 그가 벌인 죄악의 굴레를 끊으라!"
청년은 양손으로 자신의 검에 기대어 비틀대며 일어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있던 바닥에는 두 발을 딛고 꽂꽂하게 섰습니다.
그의 표정에서는 단호함이 서서히 되살아 났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의기가 피어올라 뿜어져 나오는 듯했습니다.
"의문의 기사시여, 저를 안내하소서.
부디 저를 어둠의 근원으로 안내하시어, 제가 이 검으로 죄악의 무한 사슬을 끊게 하소서."
"나를 따르라."
그 둘은 저택의 대문을 열고,
중앙홀을 지나,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
장대한 연회장에 도착했습니다.
원형 연회장의 입구와 출구를 제외하고는 모든 면이 커다란 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창으로 들어오는 황혼이, 마치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의 번짐처럼 어둠을 파먹었습니다.
연회장의 정 중앙의 기다란 의자에는 시체백작이 홀로 앉아있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다."
백작이 쓸쓸하게 말했습니다.
"옳지 못한 짓을 지난 몇 년간 해오면서,
언제나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정의의 칼날이 저의 몸을 꿰뚫습니다."
백작은 의자에서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의 코트 뒷꼬리 부분이 의자면과 마찰하면서 작게 사르륵 소리를 내며 늘어졌습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한 백 번째 시체는
제가 아닐까 하고 언제나 괴로워했습니다."
백작이 그들에게로 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옮겼습니다.
키 큰 사내는 아무 말 없이 옆걸음으로 연회장의 한켠으로 물러섰습니다.
이제 연회장을 가로지르는 붉은 카펫 위에는
루카스와 시체백작 둘 만이 서로를 겨누어 보고 서있을 뿐입니다.
백작이 루카스에게로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루카스가 검집에서 자신의 검을 빼들었습니다.
그가 던진 검집이 발광석 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냈습니다.
루카스가 백작에게로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겼습니다.
백작이 자신의 지팡이를 올려 잡았습니다.
끝부분에 보석이 박히고, 몸체가 유연하게 표현된 꾸밈없이 간소해 보이는 백색 지팡이였습니다.
"나의 약혼녀 앨리제를 만나러 왔소.
그리고 당신의 죄악의 고리를 깨어버리러 왔소."
두 사람의 서로를 향한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습니다.
"와서 나를 죽이라. 내 속죄를 내리쳐라."
시체백작이 루카스에게 달려들어 지팡이를 휘둘렀습니다.
그의 어깨에서 퍽하는 둔탁한 타격음이 연회장을 울렸습니다.
루카스는 검 손잡이로 백작의 얼굴을 올려쳤습니다.
백작의 외눈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시체백작은 비틀대다가 일어서면서 그 반동으로 그의 적의 얼굴을 향해 지팡이를 찔러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적은 가까스로 지팡이를 피하면서 무기를 휘둘러 그의 손에서 지팡이를 떨궈냈습니다.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단단한 백색 지팡이는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그 탄성에 튕겨올라 공중을 가로질러 붉은 카펫을 벗어난 발광석에 떨어졌습니다.
지팡이는 제 주인이 다시 자신을 집어 들어주길 바랬습니다.
주인과 함께 그의 적과 다시 한번 싸워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백색 지팡이의 주인,
시체백작의 심장은 이미 적의 검에 꿰뚤린 상태였습니다.
백작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의 하얀 코트 위로 붉은 피가 내려앉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내 죄악의 대가를 받는구나!"
그는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시체백작이여, 나의 벗이여! 잘 가거라!"
아무 말 없이 그 둘의 대결을 지켜보던 키 큰 사내가 기둥 뒤의 어둠 속에서 속삭였습니다.
"오오, 나의 아내 소피에 이제 난 그대 곁으로 가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백색백작이 쓰러졌습니다.
그의 심장에서 솟아 나온 붉은 피는,
마치 그가 붉은 카펫에 흡수되고 있는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켰습니다.
그의 멍한 표정에는 점점 죽음이 드리워지고 있었습니다.
루카스는 자신의 피 묻은 무기를 집어던졌습니다.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복수를 했다는 성공감과,
사람을 죽였다는 불쾌함,
약혼녀를 찾지 못한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제 제 약혼녀를 찾게 해 주시옵소서."
"아, 물론 그래야지."
신의 대답 대신 그의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탕-
마치 대답과 같은 총성에
루카스는 몸이 밀려 앞으로 쓰러졌습니다.
엎어진 그는 한참 동안 어지러움에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돌아누웠습니다.
그에게로 키 큰 사내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사내는 오른손에 들린 은색 리볼버를 다시 허리춤 가죽 권총대에 끼워 넣고 있었습니다.
뭉게뭉게 화약연기가 그의 주위에 희뿌옇게 남아 있었습니다.
루카스는 그제야 자신의 복부와 등에서 서서히 흘러나오는 붉은 핏줄기를 보았습니다.
"응, 그래, 일이 참 잘 풀렸어."
키 큰 사내가 뻑뻑한 권총대에 권총이 잘 들어가지 않자, 안간힘을 쓰며 말했습니다.
"악은 벌을 받았고, 죄악의 굴레는 끝이 났다."
권총이 마침내 제 자리에 쏙 들어가자 그는 만족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돌려 바닥에 널브러진 청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이제 네가 벌을 받아야 할 차례였지."
루카스는 점점 멀어지는 그의 말소리를 잘 듣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했습니다.
그는 왜 날 쏜 걸까?
"너는 왜 침묵했지?
너는 왜 지난 4년 동안의 시체백작의 죄악에 대해서는 침묵했느냐?
지난 4년 동안 너와 같이 약혼녀를 잃고, 딸을 잃고, 아들을 잃고, 동생을 잃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슬픔에 대해서는 어째서 침묵했느냐?"
이제 죽음을 기다리는 젊은 청년의 눈동자가 흔들렸습니다.
"너는 타인의 불행에는 순응했으나, 너의 불행은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너는 타인의 불행에는 침묵했으나, 너의 불행에는 절규했구나."
키 큰 사내는 손을 들어 살짝 손뼉을 두 번 쳤습니다.
경쾌한 소리에 연회장 한켠의 하인 대기실 문이 삐꺽 열렸습니다.
시체 하녀가 뚜벅뚜벅 걸어와 사내의 옆에 섰습니다.
"앨리제! 나의 앨리제여!"
루카스가 피범벅이 된 손을 뻗으며 소리쳤습니다.
"아니, 이제 내 거야."
그는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앨리 제야, 앨리제야."
소름 끼치는 음성이 연회장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장송곡의 마무리와도 같았습니다.
"앨리제야, 앨리제야.
네 주인이 네게 부탁하느니,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지 않으련."
시체는 목을 살짝 늘어뜨렸다가 다시 세웠습니다.
끔찍하게 보였지만, 언뜻 보면 그것은 마치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백작아, 백작아. 시체백작아.
네 주인이 네게 부탁하느니,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지 않으련."
루카스는 희미해지는 시야를 통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을 시체백작이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약혼녀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자신의 옆에 앉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녀의 핏기 없는 양손이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것도 보았습니다.
창백한 그녀의 양손이 자신의 복부에 난 총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희미하게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약혼자의 뱃속에서 그의 장기들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때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검고 끈적끈적한 피가 그녀의 손에 묻은 채 장기는 그 위에서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시체는 장기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루카스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시체백작도 앨리제의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그도 청년의 내장을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만 미쳐버렸을 뿐입니다.
창가에 걸터앉아 석양을 바라보며 키 큰 사내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시체들아, 시체들아.
네 주인이 너희들에게 부탁하느니,
죄인에게 벌을 내려 주지 않으련."
연회장 하인 대기소 문이 열리고 시체들이 절뚝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연회장 입구가 열리고 시체들이 절뚝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연회장 출구가 열리고 시체들이 절뚝거리며 들어왔습니다.
시체백작은 루카스의 상처를 양손으로 잡고 우악스럽게 벌렸습니다.
피가 튀기고 복부가 열리면서 장기들이 비린내를 풍겼습니다.
시체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부패하고 문드러진 손을 뻗어 루카스의 살을 파먹기 시작했습니다.
루카스는 그때까지도 죽지 못했습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고,
그의 폐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는 더 이상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양쪽 눈을 그의 약혼녀가 먹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소리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목청을 그의 적이 먹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청년은 죽었습니다.
* * *
그 후 뾰족한 저택은 사라졌고,
늪지대도 점점 메워지다가 평평한 땅으로 변해버렸다고 합니다.
당시 높은 산에서
나무를 하던 나무꾼 한 사람은
시체백작의 저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시장에서 물건을 팔던
한 노파는
정체 모를 이상한 노래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 노래는 아직도 그 지방에서 구전되고 있습니다.
"모았다네, 모았다네.
백둘의 시체를 모았다네,
고귀한 시체백작과
아름다운 그의 아내 소피에와
귀여운 앨리제를,
그리고 아흔아홉구의 시체를.
모았다네, 모았다네.
백둘의 시체를 모았다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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